결혼은 답이 없는 고차방정식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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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답이 없는 고차방정식 시험

by 미덕 의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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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가 너에게 반한 게 아닐까? 형 이치로는 자기 아내가 시동생을 좋아 한다고 의심한다. 동생은 아니라고 하지만, 형은 그럼 결백을 증명해보라며 동생에게 형수와 여행 가서 자고 오라는 미션을 준다. 아내에게 덫을 놓고, 걸려드나 보자는 야비한 짓이다. 동생은 팔팔 뛰며 거절하지만 형이 '안 그러면 평생 의심하겠다다' 고 하니 할 수 없이 떠난다. 형수와 시동생의 하룻밤은 한없이 길었다. 덩달아 밤을 지새운 형의 핏발 선 눈은 정말 혼자보기 아깝다. 아내는 남편 앞에서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지만 시동생과는 스스럼없이 대화해 남편의 의심을 산다. 시동생은 살갑게 구는 형수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날 밤, 형수의 요염함에 놀라 '나는 바람도, 비도, 해일도, 어머니도, 형도 다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기쁨이 또 갑자기 두려움으로 변했다' 고 했다. 한 뼘만 더 다가갔다면 형의 의심이 사실이 됐을지도 모른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에서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트로이 전쟁을 한 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또 다시 10년을 바다 위에서 떠돈다.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짬짬이 미녀여신 칼립소와 살림을 차리며 향락의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아내 페넬로페는 '정절의 화신'이다. 열 두 명 사내들의 청혼을 물리치느라 밤새 베틀로 옷감을 짜고, 날이 새면 풀어버리기를 20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청춘을 다 보냈다. 그러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이기적인 남편은 거지꼴로 변장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가 정절을 잃었는지, 사랑이 식었는지 슬쩍 떠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정체를 밝힌다. 소설 '행인'이나 서사시 '오디세이'나 지어낸 이야기지만 이치로, 오디세우스 둘 다 얄밉다. 배우자를 의심한다는 건 신뢰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결혼은 답이 없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시험의 연속이다. '약혼(engage ment) 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전쟁의 교전'을 뜻한다. 결혼을 하면 '사랑과 전쟁'이 시작됨을 암시한다. 혼인서약 때 평생 변치 않는 순정한 아내, 자기만을 사랑해주는 남편이 되리라 다짐하지만 인간은 상황적인 존재다. 불신은 불신을 낳는다. 상대를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몹쓸 상상을 한다. 배우자를 추궁하거나 휴데폰을 몰래 보거나 물건을 뒤지는 등 금을 밟는다. 이럴 때 당하는 사람은 죽기 살기로 결백을 증명하지만 상대방은 야속하게 믿어주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떳떳해도 계속 의심할 거라는 걸 알고, 피할 궁리만 한다. 사랑은 좀 식어도 정으로 살 수 있지만, 의심으로 가득찬 눈으로 감시하는 듯 노려본다면 남보다 못하다. 몸은 한 집에 있어도 마음은 '따로' 라서 '혼인한 독신 생활'을 하게 된다. 

 

 

사랑이 뜨거울 때는 '상대방에게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간담상조로 자존심을 땅바닥에다 흘려도 좋지만, 신뢰가 상처를 받으면 자존심도 주워 담는다. 그쯤 되면 벗은 몸을 보여주기는 커녕 청바지가 잠옷이고, 그렇게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안방마님과 사랑채 대감이 된다. 이쯤 되면 혼자 지독한 안개 낀 피레네산맥을 헤매는 기분이 아닐까? 

   ( 매경 ECONOMY  2022. 5. 18 ~ 5. 24  2159호 글쓴이 : 성경원 박사 가천대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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